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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렸다고 할까, 뽑았다고 할까: AI 이미지의 학습과 기여

사람의 학습과 AI 훈련은 무엇이 다른지, AI 이미지에 대한 거부감이 어디에서 오는지 살펴본다. 노력과 명칭, 도메인 지식, 실제 기여를 나누어 본다.

이 글의 목차

AI로 만든 이미지를 두고 벌어지는 말싸움을 보고 있으면, 서로 다른 두 태도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

AI로 이미지를 생성해 놓고 자기 손으로 그린 결과처럼 공을 부풀리는 태도는 싫다. 반대로 AI가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과정과 결과를 묻지도 않고 딸깍, 무가치, AI slop이라고 끝내는 태도도 보기 싫다. 생성이 손으로 그리는 것보다 훨씬 쉬워진 것은 맞다. 그렇다고 원하는 결과를 일관되게 만들고 잘못된 부분을 고르는 일까지 언제나 한 번의 클릭으로 끝난다고 보기도 어렵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개인의 노력이 보이지 않아서 AI 이미지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사람도 남의 작업을 보고 배우면서 AI 학습만 비난한다면, 오히려 사람의 학습이 더 뻔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자료를 찾아본 뒤에는 이 결론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웠다. 노력은 분명 중요한 단서였지만 전부가 아니었다. 사람과 AI가 선행 작업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공통점도 있지만, 자료를 모으는 규모와 권한, 결과를 만드는 속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같지 않았다.

그래서 질문을 조금 바꿨다. 사람과 AI 중 누가 더 고결한가를 따지기보다, 이 결과에 사람이 무엇을 보태고 무엇을 결정했으며, 그 과정을 얼마나 솔직하게 설명했는가를 묻는 편이 낫지 않을까.

사람도 보고 배우는데, 왜 같다고 할 수 없을까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창작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그림을 보고 구도와 색을 배우고, 글과 음악과 과학 지식을 익힌다. 이미 알고 있는 구조가 새 정보를 이해하고 기억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모방과 인용, 변형은 인간 창작의 오랜 일부다. 사람도 표절하며,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습 과정이 저절로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다. Naïve to expert: Considering the role of previous knowledge in memory

AI 모델도 많은 사례에서 규칙과 관계를 익힌다. 이 정도로 넓게 말하면 둘은 닮았다. 하지만 이 공통점만으로 두 학습을 같은 행위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미국 저작권청은 공정 이용을 분석하면서 생성형 AI 훈련을 인간 학습과 같다고 보는 비유에 선을 그었다. 사람이 도서관의 책을 전부 복제해 순식간에 분석하고, 원작과 경쟁할 표현물을 대량으로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억은 경험과 기존 지식 속에서 불완전하게 재구성되지만, 모델 훈련에는 저작물의 복제와 자동 분석이 들어간다. 일부 확산 모델에서 훈련 이미지와 매우 가까운 결과가 추출된 사례도 확인됐다. 그렇다고 모든 생성 이미지가 저장된 원본을 잘라 붙인 것은 아니다. 복제는 데이터 중복과 모델, 공격 방법 같은 조건에 따라 달라졌다. 미국 저작권청 AI 보고서 Part 3, Extracting Training Data from Diffusion Models

현대 예술은 오랜 인간 예술사 위에 있으므로 AI가 대신할 수 없다는 반론도 내게는 충분하지 않다. 현재의 이미지 AI도 인간이 남긴 예술 기록을 학습했고, 과학과 공학의 축적 위에서 만들어졌다. 오랜 역사 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인간 예술만의 가치를 설명하기 어렵다.

사람도 보고 배운다는 말은 AI 학습 논쟁을 끝내는 답이 아니다. 다음 질문을 시작하게 하는 말에 가깝다.

  • 어떤 자료를 어떤 권한으로 모았는가.
  • 원작자가 거부하거나 보상을 요구할 방법이 있었는가.
  • 모델이 특정 작품을 얼마나 가깝게 재현하는가.
  • 생성 결과가 원작자의 시장과 어떻게 경쟁하는가.
  • 자료와 사용 과정을 누가 설명할 책임을 지는가.

법적 답은 국가와 사건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 저작권청도 모든 AI 훈련을 한꺼번에 적법하거나 위법하다고 결론 내리지 않았다. 인간 학습과 모델 훈련을 한 줄에 세워 선악을 가를 수는 없다.

거부감은 노력 하나로 설명되지 않았다

AI 이미지에 붙은 표지만 보고 평가를 바꾸는 현상은 실험에서도 나타났다. 2023년 두 실험에서는 모두 AI로 만든 그림에 인간 제작 또는 AI 제작이라는 표지를 무작위로 붙였다. 같은 종류의 이미지라도 인간 제작이라고 알려진 쪽이 호감, 아름다움, 깊이, 가치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야기와 들인 노력에 대한 추정도 일부 차이에 영향을 줬다. Humans versus AI

사람이 들인 노력을 품질의 단서로 쓰는 노력 휴리스틱도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다. 오래 만들었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는 아니지만, 오래 걸렸다고 들으면 결과도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AI는 눈에 보이는 제작 시간을 크게 줄인다. 그래서 “이렇게 빨리 나온 결과에 같은 가격과 같은 공을 줘도 되는가”라는 반응이 생기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The Effort Heuristic

하지만 조사 결과, 노력만으로 반감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예술가 459명을 조사한 연구에서는 생성형 AI를 긍정적인 발전으로 보는 응답도 적지 않았지만, 학습 자료 공개, 동의와 보상, 스타일 모방, 소유권, 생계에 관한 의견이 크게 갈렸다. 최근 전문 시각예술가 조사에서는 고객과 조직으로부터 AI 사용 압력을 느낀다는 응답도 나왔다. 자기보고 설문이 시장 전체의 피해를 증명하지는 않지만, 거부감을 남이 쉽게 만들어서 배 아픈 감정으로 치부할 수 없게 한다. Foregrounding Artist Opinions, How Professional Visual Artists are Negotiating Generative AI in the Workplace

내가 싫어하는 두 태도도 완전히 대칭은 아니다. AI 사용 사실을 숨기고 사람의 수작업처럼 말하는 것은 공을 과장하는 일이다. 반면 AI 이미지를 전부 무가치하다고 부르는 말 뒤에는 단순한 취향뿐 아니라 동의 없는 자료 수집이나 일자리 압박에 대한 걱정이 섞여 있을 수 있다. 표현이 거칠어도 그 걱정 자체를 지울 수는 없다.

결과와 과정을 보지도 않고 AI니까 끝이라고 말하는 태도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같은 생성 도구를 써도 한 번 생성하고 끝낸 결과, 수백 장을 선별한 결과, 구도와 손 표현을 고치고 합성한 결과, 생성물을 참고로 삼아 새로 그린 결과는 서로 다르다. 이 차이를 지우면 비판도 정확해지지 않는다.

노력은 한 덩어리가 아니다

AI 이미지는 손으로 그리는 일보다 시작하기 쉽다. 첫 이미지를 얻는 데 필요한 시간과 손기술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이 차이를 숨기면서 손으로 그린 작업과 같은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노력에는 제작 시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구분 확인할 것
제작 시간 첫 결과를 얻는 데 얼마나 걸렸는가
축적된 기술 구도·색·해부·도구를 얼마나 익혔는가
판단과 수정 무엇이 틀렸는지 찾고 어떤 결과를 남겼는가
책임 사용 과정과 한계를 설명하고 최종 결과를 승인하는가

AI는 제작 시간을 크게 줄이고, 때로는 그동안 필요했던 기술의 일부도 건너뛰게 한다. 판단과 수정, 책임까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생성 횟수가 많고 프롬프트가 길다는 이유만으로 축적된 미술 능력과 저자성이 따라오지도 않는다.

AI 이미지는 딸깍 한 번이면 끝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그럼 직접 원하는 결과를 뽑아 보라고 답하고 싶다. 원하는 결과를 꾸준히 만들려면 프롬프트, 모델 선택, 선별, 인페인팅, 합성, 후보정이 필요할 수 있다. 숙련된 사용자들이 독특한 결과를 위해 건축 같은 다른 분야의 어휘를 찾고, 프롬프트 틀과 모델의 결함까지 표현 방법으로 쓴다는 질적 연구도 있다. 모든 AI 이미지가 단순한 한 번의 클릭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The Prompt Artists

어렵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학습 자료의 동의나 보상 문제에 답하지 않는다. 많이 고생한 결과가 반드시 좋은 결과도 아니다. 노력은 가치의 일부 단서일 수 있지만, 가치 그 자체는 아니다.

나는 어디까지 그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 언어 감각으로는 프롬프트를 넣고 나온 이미지 중 하나를 고른 작업에는 그렸다보다 뽑았다 또는 생성했다가 더 자연스럽다. 손의 움직임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최종 화면의 모든 선과 색을 직접 결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남기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모든 AI 보조 작업을 뽑았다 한마디로 끝내면 사람의 실제 기여도 사라진다. 생성한 구도를 참고해 새로 그렸다면 그 과정에는 그리는 작업이 포함된다. 얼굴과 손을 직접 고치고 여러 결과를 합성했다면 수정하고 합성한 부분이 있다. 작업 전체의 방향을 정하고 일관성을 관리했다면 아트디렉션에 가까운 역할도 있다.

AI 작가라는 말은 가능하다고 본다. 작가는 창작자를 넓게 가리키며, AI를 주된 도구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도 여기에 포함된다.

AI 일러스트레이터는 다르게 느껴진다. 일러스트레이터는 책·광고·게임 등에 쓰일 그림을 만드는 직업이다. 내가 이 직함에서 떠올리는 일은 직접 그림을 만드는 쪽에 더 가깝다. AI로 이미지를 생성하고 고르는 사람을 곧바로 AI 일러스트레이터라고 부르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국 저작권청은 현재 일반적인 생성형 AI에서 프롬프트만으로는 결과의 표현 요소를 충분히 통제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사람이 요소를 선택·배치하거나 구체적으로 수정한 부분은 사례에 따라 저작권으로 보호될 수 있다고 봤다. 이것은 미국 저작권법의 판단 기준이지, 누가 일상에서 작가라는 말을 쓸 수 있는지를 정하는 사전은 아니다. 프롬프트의 난도와 결과 전체의 저자성을 구분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미국 저작권청 AI 보고서 Part 2

AI를 사용해 이미지를 만든 사람과 AI 없이 직접 그림을 그린 사람이 같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나는 둘을 같은 동사로 묶지 않는 편이 낫다고 본다.

프롬프트를 넣고 결과를 골랐다면 AI로 이미지를 뽑았다고 말한다. 생성물 위에 직접 그리거나 합성했다면 AI로 뽑은 뒤 수정했다고 덧붙인다. AI를 쓰지 않고 직접 그렸다면 그렸다고 말한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일수록 AI를 써야 한다

나는 지금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일수록 AI 이미지를 직접 써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장은 작품에 인간성만 요구하지 않는다. 속도와 수정 횟수, 가격과 일관성도 요구한다. 생산성 경쟁이 이미 시작됐다면 도구를 모르는 편이 더 위험하다.

반대되는 자료와 의견도 있다. 그래픽 디자인 연구에서는 AI가 발상 단계에는 도움을 줬지만, 전문가의 구현 단계에서는 오히려 시간과 재작업을 늘리고 결과의 창의성을 높이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모든 작업에서 생산성을 높여 주는 도구는 아니었다. 윤리적인 이유로 사용을 거부하거나, 조직에서 원하지 않는 도입 압력을 받는 사람에게 시대가 바뀌었으니 써라라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 The Double-Edged Roles of Generative AI in the Creative Process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AI 이미지를 직접 써 보고, 어디서 도움이 되고 어디서 방해되는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써 본 뒤 필요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 경험이 있어야 AI가 무엇을 쉽게 만들고 무엇을 해결하지 못하는지도 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다.

도메인 지식은 AI를 다룰 때도 쓸모가 있다. 전문 시각예술가 50명과 일반인 49명을 비교한 사전등록 실험에서 예술가는 AI 이미지 복제와 발산 과제 평균에서 조금 앞섰다. 격차는 작았다. GPT-4o 에이전트는 복제 과제에서 예술가와 비슷했고, 발산 과제 평균에서는 조금 높았다. 최고 결과는 두 과제 모두 사람이 만들었다. Expertise Elevates AI Usage

나는 이 결과에서도 전문성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본다. AI 사용법은 별도로 익혀야 한다. 도메인 지식이 무엇을 만들지 정하고 결과를 판단하는 기준이라면, AI 사용법은 그 판단을 실제 작업으로 옮기는 방법이다.

도메인 지식은 AI 시대 초입에 유리하다. AI 사용법까지 익힌 전문가는 더 좋은 결과를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

결과·과정·판단·책임으로 나눠 본다

AI 이미지 한 장을 두고 예술이다, 딸깍이다부터 외치면 서로 다른 질문이 섞인다. 나는 당분간 다음 네 층을 따로 보려고 한다.

물을 질문
결과 목적에 맞고 완성도가 있는가
과정 무엇을 생성하고 선별하고 수정했는가
판단 사람이 어떤 문제를 발견하고 결정했는가
책임 누가 사용 사실과 한계를 설명하고 최종 승인하는가

결과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학습 자료의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과정이 길었다고 결과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도메인 지식이 있어도 공을 과장할 수 있고, 생성 과정이 짧아도 목적에 꼭 맞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네 층은 서로 연결되지만 같은 질문은 아니다.

나는 프롬프트를 넣고 후보를 골랐다면 우선 AI로 뽑았다고 표현하는 편이다. 직접 고치고 합성했다면 그 부분을 덧붙이면 된다. 이 표현이 작품의 가치를 자동으로 낮추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하지 않은 일까지 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지 않는다.

조사하기 전에는 사람의 학습이 더 악질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고 본다. 어느 쪽이 더 악질인지 따지는 일에는 큰 의미가 없다. 사람도 남의 작업을 부당하게 가져갈 수 있고, AI 훈련도 용도와 자료 수집 방식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에 도덕 점수를 몰아주는 일이 아니다.

AI 이미지를 이유 없이 전부 무가치하다고 부르는 태도에는 여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만들어 보기 어렵다는 말로 동의와 보상, 공로의 문제를 덮고 싶지도 않다. 이제 내가 묻고 싶은 것은 간단하다. 무엇이 나왔고, 사람은 무엇을 판단하고 고쳤으며, 그 과정과 결과를 누가 설명하고 책임지는가.

붙임: 조사하면서 읽은 자료


AI disclosure

Researched and drafted with OpenAI Codex using GPT‑5.6 Sol (xhigh reasoning). Editorial review and final approval by Yioo.